삼성전자 주가가 8만원을 다시 넘었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 제목이다. 5만~6만전자에서 헤매던 투자자는 서둘러 차익을 실현했고, 추가 상승을 기대하고 매수에 나선 투자자도 많다. 그 때문에 거래대금도 큰 폭으로 늘었다. ‘8만전자’라는 말은 삼성전자 주가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아니다. 7만9900원과 8만원은 100원 차이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투자자는 7만 또는 8만이라는 맨 앞자리 수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을 투자 결정의 지표로 삼는다.
왼쪽 자릿수 효과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대표적 사례가 대형마트의 가격 정책이다. 대형마트에는 6900원, 9900원, 1만9900원 등 가격이 900원 혹은 9900원으로 끝나는 상품이 유난히 많다. 앞자리만 바뀌게끔 가격을 살짝 낮추면 확 저렴해 보이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그런 얄팍한 상술에는 안 속는다고? 그렇지 않다.
타티아나 소콜로바 네덜란드 틸뷔르흐대 교수 등 세 명의 연구자가 ‘저널 오브 마케팅 리서치’ 2020년 8월호에 게재한 논문이 있다. 연구자들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먼저 4.01달러짜리 땅콩버터와 3달러짜리 땅콩버터를 보여줬다. 그다음에 4달러짜리 땅콩버터와 2.99달러짜리 땅콩버터를 보여줬다. 두 실험에서 땅콩버터의 가격 차이는 1.01달러로 같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3달러짜리 땅콩버터보다 2.99달러짜리 땅콩버터를 훨씬 싸다고 인식했다. 4달러와 2.99달러의 차이를 4.01달러와 3달러의 차이보다 크게 받아들인 것이다.
왼쪽 자릿수 효과를 역이용하면 가격을 티 안 나게 올릴 수도 있다. 제임스 매킬로프 미국 조지아대 심리학과 교수는 담배 한 갑 가격을 5.6달러에서 5.8달러로 올렸을 때와 5.8달러에서 6달러로 올렸을 때 담배 판매량 변화를 조사했다. 5.8달러에서 6달러로 올렸을 때 담배 소비 감소폭이 네 배나 컸다. 가격을 올리더라도 앞자리 수만 안 바뀌면 저항감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7만전자, 8만전자 사례처럼 주가가 특정 단위 가격을 넘어섰을 때 주식 거래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왼쪽 자릿수 효과는 기준이 되는 수가 함께 제시될 때 극대화된다. 할인가만 2만9900원이라고 적어 놓기보다 정가 3만5000원에 빨간 줄을 긋고 그 아래에 2만9900원을 적는 것이 좋다.
물론 수를 끝까지 읽으면 그 수의 실제 크기를 알게 된다. 그러나 앞자리 수의 이미지가 이미 머릿속에 고정돼 객관적인 인식을 방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왼쪽 자릿수 효과를 ‘왼쪽 자릿수 편향’이라고도 한다.
왼쪽 자릿수 효과가 주는 교훈은 직관이나 첫인상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격표의 앞자리 수가 바뀌어 엄청나게 싼 값에 파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몇백원밖에 할인되지 않은 상품도 많다. 8만전자도 마찬가지다. 왼쪽 자릿수에 얽매이지 말고 주식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투자에 성공할 수 있다.
유승호 경제교육연구소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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